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 4컷 만화다. 의식의 흐름을 찾다가 나온 짤이다. 내가 『고래』를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이 바로 의식의 흐름이다.
소설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기본적으로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게 소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래는 그렇지 않았다. 손이 움직이는대로 글을 쓴듯이 전달하고자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자유로움은 역설적으로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하는 요인이 됐다.
표지도 고전적인 고래는 내용 또한 고전적이었다. 현대사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설정은 달랐다. 유신을 선포한지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장군이 통치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또한, 조선시대같은 해방전후를 표현하기도 했다. 어디선가 봇짐을 들고 나올법한 배경설명이 있다. 하지만 대략적인 시대는 현대이다. 물론 작가가 이를 충실히 따르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노파-금복-춘희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3명의 여인이 등장하며 3명의 여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산골짜기에 살던 금복이 시간이 흘러 부호가 되는 이야기 하나, 억척같이 돈을 모으다 그만 모은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이승에 원한만 가득히 쌓인 노파의 이야기 하나, 지어미가 누군지도 모른채 말을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림받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춘희의 이야기 하나, 총 3가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을 읽다보면 참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것들이 많다. 허나 이런 어이없는 이야기들이 은근히 재미를 준다.
"이 소설을 '특별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소설에 대해 우리가 가져온 기존의 상식을 보기 좋게 훌쩍 비켜서는, 놀랄만한 다채로움과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처음엔 낯설음과 기이함, 동시에 상당한 당혹스러움과 저항감을 안겨주며 결말까지 숨가쁘게 몰입하게 만든다."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 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약간 거창하게 말한다면, 자신과는 소설관이 다른 심사위원의 동의까지 얻어냈다는 사실이 작가로서는 힘있는 출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을 심사한 심사위원들의 말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명관 작가는 작가가 되기 위한 교육도 학습도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책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우연히 군대시절 문학을 알게 되고 좀 더 책을 읽게 된 계기 하나와 제대 후 아는 동생이 영화를 만든다기에 가끔 찾아간 작업실에서 영화를 접하게 된 계기 하나가 천명관을 작가라는 자리로 안내했다.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기 이전에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했고 영화 단편 각본을 조금씩 쓰면서 지냈다고 한다.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움이 그의 작품에 묻어나온 것은 아닐까?
소설이라함은 허구성으로 대표되는 책 장르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설을 다른 식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역사소설이면 역사를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하고, 추리소설이면 추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이 허구성을 무기로 가지고 있다면 소설에 앞에 붙는 요상한 단어의 딱딱한 기준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을까? 천명관 작가는 이러한 고민을 시작으로 작품을 집필했다.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하기 힘든 고래. 하지만 그런 모습을 가지기에 고래는 조금 재밌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작가의 말, 시시각각 변하는 등장인물,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책을 소개할 때 내가 던진 의식의 흐름을 보기좋게 무너뜨린다. 의식의 흐름도 결국 하나의 플롯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책 내용은 말해봐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되는 이야기 뿐이다. 판타지 소설이지만 현대 역사 소설의 느낌이 묻어나오는 책이다. 죽은 사람이 나타나고 동물이 말을 하기도 하며 여자가 남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래는 이런 어지러운 설정이 이해되는 책이다. 그래서 읽어야만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고래는 읽어봐야 안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한 사람도 똑같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책인지 모르겠어"
비블리 앱을 통해 4.5점을 줬다. 아무래도 전문 작가가 아니니 의식의 흐름도 한계가 있었다. 재밌는 것도 한 두 번 봐야 재밌는 것이지 매번 재밌기는 힘들지 않은가. 그런 느낌이었다. 이것이 소설의 법칙이고 평가자의 점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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