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책방

나의 취업이야기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직업史 - 2 심연의 끝

띵동이야기 2020. 10. 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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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곳 그 어딘가

 

 사회복지를 직업으로 삼았다. 직업으로 삼기전에 많은 봉사활동과 실습을 경험했다. 아직 심연을 보지 못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그저 봉사활동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것저것 봉사활동을 합치면 300시간정도 했다. 아마 적십자사 취준을 준비한 분들은 알텐데, 적십자사 채용공고에 보면 봉사시간 300시간이상은 가산점이 있다. 난 그 점수를 받아 서류를 합격했다(필기 시험이 다른 곳과 겹쳤고 운 좋게 그곳에 합격했다. 하지만.. 이 얘기는 이직이후의 이야기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에 담기로 한다.)

 취업전에 이미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깊은 곳에는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만이 존재했다. 당시 나는 26살이었다. 어렸다. 그래서 계약직이어도 상관없었다. 다가올 미래를 알지 못한채

 

 고개를 돌려봐도 내 주위엔 계약직 밖에 없었다. 공채를 한지 7년이 넘었고, 계약직에서 정규직을 전환한것도 사례가 없었다. 물론 공공기관은 그렇다. 관행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다 그랬다.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계약직과 정규직의 가진 능력을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났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이상했다. 정원 100명 중 절반이상이 계약직이었고 얼마없는 정규직은 대부분 낙하산이었다. 고위 공무원에서 공공기관으로 넘어오는 관행적 낙하산이 아니라 주임, 대리, 과장도 낙하산이었다. 차라리 고위 공무원이라면 능력이나 인맥이라는 외적 요소를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임, 대리, 과장은 말 그대로 낙하산이었다. 부모가 뛰어나서 혹은 뒷 배경이 좋아서도 아니다. 다른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선임이 현재 회사로 옮겼기 때문에 1+1으로 함께 딸려온 것 뿐이다. 그래서 일을 정말 못했다. 현재 회사는 3번째 회사인데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첫 번째 회사 사람들은 일을 정말 못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프린터 설치나 한글&엑셀 외 기타 프로그램 활용 등에 무지했다. 기본적인 컴퓨터 작업이 안됐으니 한글&엑셀 능력은 말해 무엇하랴. 나는 그나마 운좋게 초등학교때부터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라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 모든 걸 맡겼다. 아마 이때부터 모른척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아졌던것 같다. 호의는 결코 호의로 돌아오지 않는다. 호구가 되어가면 모를까.

 

 회사 직원들의 무능력함은 둘째로 치더라도 사회복지란 업무는 사실 직업의식이 중요하다. 어느 직업이 안그러겠냐만은 인간의 욕구인 생존욕구를 책임지는 사회복지는 아무런 직업의식없이 하기는 어려운 직업이다. 근데 사회적 인식은 단지 봉사로 여겨진다. 그래서 최저생계비로 밤 늦게까지 야근 수당없이 일한다. 그리고 그게 당연했다. 왜냐하면 봉사니까. 그래서 그런지 사회 취약계층을 돕는 일을 하지만 하는 말만 조금 바꿔놓으면 그저 일개의 회사원과 다르지 않았다. 부족한 급여, 많은 노동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충분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나라에서 받은 사업비에도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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