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는 직장만 다니면 되는줄 알았다. 계약직이 되고나서는 정규직이 되면 되는줄 알았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었어도 취업은 끝나지 않았다.
운이 좋게 다 찍은(?)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면접을 보러갔다. 1차면접으로 그룹면접이었다. 그룹면접이라 함은 주제가 주어지고 이를 토대로 찬/반이 나뉘어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주제는 대체휴일이었다.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 제3조 대체공휴일제의 도입에 있는 내용이다.
· 설날, 추석 연휴가 다른 공휴일과 겹치는 경우 그 날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을 공휴일로 함
· 어린이날이 토요일 또는 다른 공휴일과 겹치는 경우 그 날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을 공휴일로 함
이 내용을 반대할 직장이 있는가? 없다. 하지만 반대해야했다. 토론이기 때문이다. 대기하는 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려 논리를 만들었다. 조원들과는 면접 시작할 때 처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다행히 다들 인상도 좋고 특별히 문제될 사람도 없었다. 사회자를 자처한 한 명의 지원자를 중심으로 면접이 진행됐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면접관은 매우 피곤해보였다. 아침부터 이어진 면접이었고 내가 면접을 본 시간은 식사시간 이후인 2시였기 때문이다. 뭘 얘기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다. 뚜렷한 찬/반이 나뉘지 않은 주제였기 때문에 오히려 면접관이 관심없는것이 호재였다.
그렇게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필기시험을 보고난 후 느꼈던 무력감이 밀려왔다. 잘한것 같지도 않고 뭐가 틀렸는지 뭘 수정해야할지 모르겠는 무기력한 상태였다. 떠나기로 했다. 충동적으로 제주도 비행기를 알아봤고 난 그렇게 이틀 뒤 김포공항에 갔다.
이호테우 해변을 걷다가 1차 합격 문자를 받았다. 나는 좀 긍정적인 편이다. 긍정적인 상상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번 합격문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차 충격 2차 뺨때리기 3차 현실자각 이런 순서로 나는 1차 면접 합격문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주일 뒤 2차 면접을 위해 회사 본사로 향했다.
지하1층 대회의실에서 대기했다. 사실 면접 준비라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회사 홈페이지 몇 번 보고 기사도 몇 번 읽었다. 그게 전부였다. 공부했다라고 말하기 부족한 수준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다. 만약 이번에 불합격한다면 토익학원부터 다니리라고.
그런 다짐을 하면서 대기하는데 1차 면접때 같이 본 지원자를 보았다. 아, 한 분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하나, 둘 늘어나더니 드래곤볼이 모이듯 모두가 모였다. 면접은 어떤 기준이었을까? 불안감과 긴장감을 가진채 6층 회의실로 올라갔다. 훗날 내가 두 번째 팀으로 맞이할 팀이 있는 곳이었으며, 폭언과 눈치를 피해 도망올 공간이기도 했다.
지원자는 여자4명, 남자1명이었고 면접관은 여자1명 남자4명이었다. 지원자 한 분이 유난히 말을 잘했다. 속으로 이 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내 장기인 컴퓨터 활용 능력을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래서 컴퓨터나 전산을 잘하냐는 것이었다. 한글과 엑셀을 잘한다는 의미였지만 면접관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뭔가 면접관의 말을 반박한 것 같아 불안했다. 게다가 그전부터 말을 잘한 지원자가 동종업계 경력자라는 것도 알게됐다. 씁쓸한 면접이었다. 집에 가면서 강남쪽 토익학원을 알아봤다.
다시 1주일 뒤 문자가 왔다. 이번엔 집에 혼자있었다. 문자를 확인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마치 축구선수처럼 무릎 세레모니를 하며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기뻤다. 무엇보다 다음 날 내가 갈 곳이 있어서 기뻤다. 처음으로 채용신체검사를 했고 정장도 구매했다. 자격지심에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지인도 만났다. 그렇게 1주일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또 다시 사람인에 접속하게 되었다.
'나의 취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직업史 - 7 (0) | 2020.11.02 |
---|---|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직업史 - 6 가 족같은 회사 (0) | 2020.10.30 |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직업史 - 4 도비는 자유에요! (0) | 2020.10.26 |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직업史 - 3 미필적 고의 (0) | 2020.10.26 |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직업史 - 2 심연의 끝 (0) | 2020.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