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을 물어볼 때 나는 빨리 손절해야했다. 5일 동안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그전 회사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융숭한 대접이었다. 5일간 교육을 해주다니 신기했다. 정규직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역시 회사가 투자해주는구나 생각하며 기뻤다. 하지만 아둔한건 나였다.
가족같이 지내자고 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가족같이 지내고 술도 마시고 그러자고 했다. 술 마시면 얼마나 마시겠어 라고 생각했다. 안일한 생각은 나를 옥죄었다. 오리엔테이션 3일차에 술을 마셨다. 선배들과의 만남이라는 이름 아래 신입사원 14명과 선배들이 만났다. 그전에 해온 가벼운 회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도 이렇게 술을 마시지 않을것이다. 내일이 있는 사람들이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셨다. 심지어 다음날 9시에 출근해야하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대충 나의 주량을 알기도 했고 실수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 술을 자제했다. 그래서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도 견딜 수 있었다. 환영회니까 이정도겠지 생각했다. 환영식 중간중간 선배들이 말한 이야기는 까마득하게 있고 있었다.
지금은 별로 안 먹는거야. 팀 확정되면? 그 땐 좆된다. 너희
동종업계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알 회사이고 신이 감춰둔 회사라는 별명도 있는 회사였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좆소기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는 행동은 좆소기업 뺨을 후려쳤다. 5일차 되던 날 내가 앞으로 일할 팀을 배정받았다. 오리엔테이션의 마지막 날이었고 회사를 재직할 때 가장 그리워하는 5일이기도 했으며 탈주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금요일이었고 마침 팀원들 대부분이 출장으로 자리에 없었다. 별일없이 6시에 퇴근했다. 다가올 폭풍을 모른채.
폭풍은 월요일부터 다가왔다. 월요일부터 회식을 했다. 신입직원 환영회. 내가 반갑지 않은데 무슨 환영회냐 싶지만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신입사원이. 이것은 어린 내가 눈치로 깨달은 사회생활의 법칙이었다. 눈치껏 따라나간 회식자리는 "좆됐다"라는 말이 생각날만큼 힘들었다. 선배가 말한게 엄살이 아니었다. 무조건 원샷이었고 7명이서 시작한 회식은 1시간이 채 되기전에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 두 병씩 쌓인 소주병과 맥주병은 어느덧 두 줄이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 잘 마시지 않던 술이기 때문에 힘들었다. 거절해보기도 하고 안 마시기도 하고 나를 방어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썼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욕이었다.
야 안 먹냐? 아 00야 띵똥이 안먹는데 니 후임이 안먹는다는데?
제대하면 군대가 그리울 거라더니, 사회가 더 한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시작됐다 사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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