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다보면 심심치 않게 미필적 고의란 말을 듣게 된다. 미필적 고의란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의도를 가지고 실행한 경우를 말한다. 세월호 때가 그랬고 최근에는 구급차를 막은 택시기사가 있었다. 택시기사는 최근 2년을 구형받았다.
관련기사 : https://www.yna.co.kr/view/AKR20201021109151004?input=1195m
나의 직업사에서 이런 미필적 고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나도 목격자로서 관련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업비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사실상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모두 경험해봤을 사항이다. 사무용품, 커피 등 소소한 횡령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본인이 열심히 해서 번 돈과 좋은 곳에 쓰라고 준 돈은 개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노력이 덜 했을수도 있는 것이니까. 물론 사회복지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정도의 직업의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검은 그럼자로 인해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사회생활이 조금씩 어그러져갔다.
점차 사회복지법인이라는 말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일반 회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할바에는 차라리 돈을 벌기로 마음 먹었다. 공적인 출장을 핑계로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부장, 1+1 낙하산으로 온 주제에 말만 많은 대리, 현 부회장의 오른팔로 들어온 낙하산 과장 등 결함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가장 화나게 한 사건은 따로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회사는 7년 동안 공채가 없었다. 능력도 없는 낙하산들을 데려오니 당연히 T.O가 없는건 불보듯 뻔한일이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부회장이 야침차게 공채를 준비했고 회사 내 많은 계약직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오른팔을 적합한 절차로 채용하기 위해서였지만.
나는 사실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이미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근 5년이상 회사에서 파리목숨으로 지낸 계약직 선배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것도 중요하지만 난 이들의 노고를 먼저 인정해주고 한 두 명정도는 정규직 전환을 해줘야 했다고 생각했다. 1~2년도 아니고 5년동안이면 그 세월이 얼마인가! 하지만 회사는 그러지 않았고 모두가 공정한 공개채용을 시작했다. 물론 이게 맞지만 마음에서는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약직이 쓴 공채, 결과는 어찌 됐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원한 12명의 계약직 중 단 한 명만 채용됐다. 11명은 서류에서부터 탈락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게임이 안됐다. 이미 대단한 스펙을 가진 지원자들이 서류를 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스펙을 가진 계약직들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런 불상사 이후 인고의 시간을 거쳐 한 해가 지나 두 번째 공채가 시작됐다. 이번엔 계약직들을 서류 면제 해주겠다고 했다. 난 또 안했다. 1+1 대리는 염치도 없이 지원해보라고 했다. 법이 없었다면 주먹이 먼저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 때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다시 시작된 공채는 서류를 면제 시켜줬다고 해도 여지없이 모두가 탈락했다. 이번엔 아무도 붙지 않았다. 근데 웃긴건 작년과 올해 두 번 실시된 공채에서 14명이 뽑혔는데 단 2명만이 남았다. 그만큼 이 회사가 구린걸 알았던 것이다. 대부분 3개월 이내에 나갔으며 5일 이내에 나간 사람도 있다. 속으로 기뻐했고 내 판단이 틀리지 않음에 감사했다.
결정적으로 이 회사를 떠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한 달 계약 연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다 한 달. 잘못 본게 아니다. 처음엔 9개월로 시작해 1년을 연장했다. 그렇게 1년 9개월을 일했는데 다시 제시한 계약 조건은 한 달이었다. 어이가 없었고 계약 만료로 떠나 실업급여를 받기로 결정했다. 갈 곳있냐 니가 나가서 뭘하겠냐 등 개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디든 이곳만 아니며 됐으니까.
ps. 부회장 오른팔 과장도 퇴사했다. 어떻게 퇴사했는지 알면 참 어이가 없을 것이다. 과장이 여름 휴가를 갔다. 월요일 복귀였는데 오지 않길래 무슨 문제가 있나 했더니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근데 그것도 부장 개인메일로 사직서를 송부했다고 한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런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사실이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참...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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