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위 내밑으로 다 모여
군필자라면 다 들어봤을 말이다. 선진병영을 강조한 시기에 군생활을 했던 나도 종종 들어본 말이다. 제대하면 듣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짧은 생각이었다.
전 회사에는 멘토-멘티 문화가 있었다. 신입사원을 선배들이 이끌어 준다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는 '니 멘토 누구냐' 라는 말로 변질됐다. 신입사원이 실수하면 멘토를 불러서 갈궜다. 군대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첫 회식 이후 꼬리표처럼 날 따라다녔다. 뭐만하면 멘토를 찾았다. 내 멘토가 차장이라 어느정도 경력은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무한도전 정과장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6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 족같은 회사다. 그러다보니 실제 직급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이가 우선이었고 그냥 좀 멍청해보이면 바로 형동생으로 지냈다. 실력이나 성과는 중요치않았다. 왜냐하면 협회였기 때문이다. 아는사람은 알겠지만 협회나 공공기관이나 능력보다는 엉덩이 무게가 더 중요하다. 엉덩이가 무거울수록 자리에 오래 앉아있고 오래 앉아있는 순서대로 승진을 하고 주요 자리를 꿰찼다.
실무능력보단 인간관계가 더 중요한 곳이었고 상대적으로 아직 사회화가 덜 된 나에게 이 회사는 어려웠다. 자주 불려갔고 제대 후 한 번도 꾸지 않은 군대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한 번의 기회가 왔다. 기회라기 보다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서서히 꿈틀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 회식을 12시까지 했다. 사실 난 이때 이런 생각을 했다. 놀 줄 아는구만. 다음날 출근했고 카페에서 오전 시간을 보낸 후 11시에 점심을 먹었다. 개꿀 직장이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미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미래인 대리, 과장, 차장은 12시까지 회식을 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일을 시작했다. 카페를 와서도 휴대폰으로 일을 했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 있는 회식이라면 참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틀 뒤 또 다시 회식을 시작했다.
만나야 할 사람, 알아야 할 사람은 왜 이렇게 많고 복잡한지, 입사 한 지 1주일 동안 3번의 회식을 했다. 이런 과정을 한 달 동안 겪고 월급을 받아보니 왜 돈을 많이 주는지 알 것 같았다. 다 간에 좋은 약을 먹고 병원에 다녀야하기 때문이다. 어쩐지 모두들 얼굴빛이 안 좋더라니. 회사에 출근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약 12번의 술자리를 가져보니 어떤 행동을 취해할지 슬슬 감이 잡혔다. 회식이 싫었다. 처음엔 못 마시는 척 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를 내봤다. 화를 내도 그 날만 편할 뿐 바뀌는 건 없었다. 싸워야 했다. 지렁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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