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웠다. 말 그대로 싸웠다. 주먹은 오고가지 않았지만 그 직전까지 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싸우는 척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쌓여온 분노는 연기가 아닌 실제가 되었다. 의도는 이러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다른 팀과 조인한 회식이었다. 다른 팀에 마침 이미지가 안 좋은 대리가 있었다. '술김에 대리랑 싸우는 척' 이것이 나의 의도였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화려한 분노가 날 감쌌다.
크게 싸웠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남자끼리 술 먹으면 그럴 수 있다고 무시했다. 결심이 섰다. 그만두기로 결심했고 그 즉시 회식자리를 탈출했다. 노래방을 나가며 날 옥죄였던 단톡방을 모두 나갔다.
그냥 나간것도 아니고 '초대거부 및 나가기'로 나갔다. 팀장한테는 하루 쉰다고 당일 오전에 말한 후 무단 결근했다. 많은 연락이 쏟아졌다. 다 싫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도 날 챙기지 않았으면서 이제와 날 챙기는 모습이 미웠다. 뒤에서 날 욕했으면서 이제와 걱정하는 척하는 동기들도 싫었다. 하루 생각을 해보고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다음날 출근했다.
회사 도착 전 이런 문자를 받았다. 7층으로 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고 회사에 들어서자 모두가 날 보았다. 팀장이 자리에 있었고 나는 말했다.
면담 좀 하시죠
그동안 있었던 일, 회식을 싫어하는 이유, 가족사, 오늘 받은 문자 등등 모든 것을 다 이야기했다. 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다시 마음잡고 열심히 다녀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얘기를 듣던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술 안먹일게. 술 자리에도 안 부를게 걱정마
좋기도하고 씁쓸기하기도 했다. 당연한 것을 얻기위해 온 마음을 다해 싸웠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독립운동이 떠오르기도 했고 민주화운동이 떠오르기도 했다. 적어도 나에게 그런 운동과 맞먹을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두 운동의 끝이 좋지 못했듯, 나의 운동도 끝이 좋지 못했다.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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